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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 가는 코너 / 재즈 스탠더드 넘버와 관련한 뮤지컬 작곡가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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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eyyoung 작성일 10-11-14 01:01 조회 7,48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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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3) 콜 포터 (Cole Albert Poter, 1981.6. 9 ~ 1964. 10. 15)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출생한 콜 포터는 조지 거쉬윈, 어빙 벌린 등과 동등한 위치에서 20세기의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파퓰러 음악, 뮤지컬, 영화음악의 작사,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수많은 뮤지컬과 수없이 많은 곡들을 만들었다. 재즈의 스탠다드 멤버로 정착하였고, 깨끗하고 도시적인 멜로디를 선보였다.

포터는 미국의 인디아나주 페루에서 태어나고 감독교회 가정에서 자랐다. 어린시절부터 좋은 교육환경에서 음악을 접하며 자란 그는 6살 때 바이올린을 배웠고, 8살 때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뛰어난 자질을 보여준다. 10살 때에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첫 번째 오페레타 작품도 쓸만큼 그의 음악적 능력은 뛰어났다. 포터는 우스더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여기에서 포터에게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준 애버크롬비 박사를 만난다. 그는 포터에게 음정과 박자, 가사와 음악의 관계에 대한 중요성을 가르쳐 주며, 포터는 작곡에 있어 뛰어난 재능과 문학적 재능의 작사로 탁월한 음악들을 만든다. 1909년 이후 예일대 재학생 시절에 포터는 교내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전곡 6편, 풋볼팀 응원가 등 300여곡을 작곡한다.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된 포터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되고 이때 맺은 인간관계가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할 때 든든한 발판이 되어 준다. 손자가 음악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던 외할아버지의 압력으로 하버드 법대에 들어가지만 포터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학업을 포기하고 뉴욕의 예일클럽으로 돌아와 음악활동을 한다.

1917년 파리로 건너간 포터는 10년 동안 유럽에 머물면서 부유한 미국인으로 흥청망청 파티를 즐기며 보낸다. 동성애자로서의 성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인 이혼녀인 린다 토마스와의 깊은 우정을 쌓게 되고, 결혼을 하여 평생을 함께 한다. 1937년 그는 승마를 하다가 낙마하는 사고로 양쪽 다리가 골절되고, 나중에는 한 쪽 다리를 절단하게 된다. 1930년대에는 로이 로저스와 빙 크로스비, 앤드류의 여동생의 히트 음악들을 1940년까지 작곡한다. 1948년 이후에는 토니어워드, 포터어워드 등에서 베스트 뮤지컬상, 작곡상, 작사가상 등을 수상하였다. 1957년 그는 오른쪽 다리를 절단 후 그의 삶의 행복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살았다고 한다. 1964년 10월 15일에 세상을 떠난 후, 그의 희망에 따라 아내 린다와 그의 아버지 샘 포터의 무덤 사이에 묻히게 된다.

콜 포터는 1,900개의 앨범에 곡을 만들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여러 영화 사운드 트랙에서 그의 노래를 우리는 접할 수 있다. 2004년에는 영화 [De Lovely]를 통해 그의 삶과 사랑, 영화, 뮤지컬이 소개되었다.

그의 곡은 오늘날 재즈 스탠더드 넘버의 대표적인 곡으로 많은 재즈 뮤지션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대표곡으로 Let's Do It (Let's Fall in Love), You Do Something to Me, You've Got That Thing, What Is This Thing Called Love?, Love For Sale, Night and Day, I Get a Kick out of You, I've Got You Under My Ski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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